소농의 가난한 밥상, 풍성한 밥상

소농의 가난한 밥상, 풍성한 밥상

소농7기 소향원  2016.7.24.

 

이번 주 은모샘과 저는 음식을 준비하는 당번을 맡았습니다.

재료비 0원.  대중의 만족도 매우 좋음. 맛있다 완벽하다는 찬사를 받았음.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고정 당번 제의까지 받음.ㅋㅋ

오늘 맛있다는 감탄사를 귀가 딱지가 않도록 들었습니다. 맛있는 밥상을 제공한 것이 기쁘다기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죄책감이 드는게, 맛있게 한 덕에 여러 사람 과식하게 하였으니까요. 밥상 역시 삶의 모순과 역설을 피해가지 못하네요.

미정샘이 밥상후기를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하여 부득이하게 오늘 밥상을 복기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저는 오늘 요리의 레시피 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요. 오늘 밥상을 만들기까지의 고민과 과정을 함께 공유하여, 어떤 것을 두고 소농의 밥상이라해야하는지 각자가 소농의 밥상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준비과정

저희 당번도 처음에는 관습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떤 메뉴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하였고, 고민의 결과 주메뉴를 카레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로지 편의를 위한 결정이었지요. 교육장에 이미 카레의 재료가 있는데다 만들기 쉬운 음식이라서요.  당시 은주샘이 냉장고 정리하면서 개골팥 한봉지, 쌀가루, 조청 등을 찾아낸 터라 참은 이런 것들을 활용해 팥떡, 내지 팥빙수를 하기로 하였지요. 날씨를 보아 더우면 팥빙수 비오면 팥떡, 내지 팥죽 등. 지현님께 미리 빙수기는 빌려 놓았구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카레라는 주메뉴를  위해 저희는 장보기를 고민하였고, 감자, 양파 등의 재료는 교육장에 있는 것을 쓰기로 하고, 카레 가루와 당근 등은 편의를 위해 근처 마트에게 사기로 하였습니다. 살 재료가 두가지 뿐이어서 이것을 위해 먼 곳 까지 가기는 그렇고 해서 근처 마트에서 사기로 한 것인데, 문득 음식 준비하는데 제철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또 마트라는 데를 이용해야하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이렇게 결정한 것이었는데, 뭔가 석연치 않았습니다.그러다 고민 끝에 제가 은모님께  긴급 제안을 하였지요. 우리 메뉴를 정하지 말고, 당일 냉장고에 있는 재료, 밭에 있는 재료만 이용해 소농의 가난한 밥상을 차려보자구요.

우리는 지금까지 항상 잘 먹어왔고 한번쯤 잘 먹지 않아도, 맛있지 않아도 큰 일이 생기지는 않는 법, 오로지 있는 것만을  활용하여 있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소농의 밥상을 차려보자는  취지였지요..

원래 기본적으로 저희는 단순한 음식, 교육장에 있는 재료 위주로 사용하는 것을 지향하였지요. 다만 발상의 전환이 된 부분은 ‘메뉴에 맞춘 재료사기’가 아니라 ‘있는 재료에 맞춘 메뉴만들기’로 바꾼 것이지요. 거기에다 소농의 정신을 살린 가난한 밥상차리기라는 의미를 덧붙인것이지요. 전 늘 소농, 소농이라고 했지만, 먹거리에서 소농의 정신이라면 뭘까하는 고민은 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소농의 먹거리라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있는 것과 내가 키운 것을 주재료로 한 것이 소농의 밥상이 아닐까하는…

1. 주메뉴 

수제비, 재료: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식자재 및 밭에서 따온 신선한 채소.

-> 재료: 교육장감자, 양파,전날 쓰고 남은 호박 반 덩이,마늘(주방식탁에 오랫동안 굴러다님),고추,부추,깻잎, 파 등

수제비 반죽(우리교육장밀+소금+물+송창환님땀): 전날 송창환님이 열심히 반죽한 것을 냉장고에서 하루 숙성시켜 이용함.

수제비 국물 우리기(은모님과 함께 멸치,다시마, 전날 하교 후 찬물에 멸치 다시마를 넣고 하루를 우려냄, 오늘 아침 다시 끓여 우려냄)

수제비 뜬 사람들: 은빛, 정훈, 헌국,영준, 은모, 저 등, 여러명이 투입되어 신속하게 떠 균일하게 익힐 수 있었던게 포인트지요. 수제비를 같이 뜬 사람들은 지나가다 맛있는 수제비 국물 냄새를 맡고 모여들어 자진하여 수제비를 떠 주었지요. 참 감사하였지요.

수제비 간을 본 사람들: 연미, 창환, 은빛.. 당번 등. 모두 각자의 미각을 확신하며, 적극적으로 간을 맞춰주었지요.

풍부한 과일 : 은빛정훈님이 맛있는 천도복숭아와 영준님이 오늘도 수박을 사오심. 함께 맛있게 나누어 먹었지요.

사람들 모두 ‘맛있다’, ‘맛있다; 감탄사를 끊임없이 연발하였는데, 오늘 하루 맛있다는 말을 귀가 딱지가 않도록 많이 들었어요.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근데 그 맛있다라는 맛을 당번 솜씨가 탁월하여 완성해 낸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참여와 미각이 결합하여 이루어낸 결과물이라는데 의의가 있지요.

2. 참

1)오전 참: 비빔국수, 부침개

토요일 당번(정화,연미님)이 비빔국수하려다가 먹을거리가 많아 하지 않고  놓고 간 김치국물고추장양념, 은모샘이 공수해 온 노각,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국수.

은모님의 노련함으로 삶아낸 국수에, 제가 미리 소금 뿌려 물기를 빼 아삭하게 만들어 놓은 노각 오이, 어제 당번이 떨구고 간 김치고추장 양념을 손으로 버무려 완성.

부침개는 본래 메뉴는 아니었으나, 국수를 삶을 때 국수 중 절반이 칼국수면이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여 급히 메뉴를 변경한 것이었습니다, (메뉴 변경만 아니었으면, 좀더 논둑 풀메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요. 부침개가 변수였지요).부침개의 재료는 교육장밀가루(냉장고냉동보관)에 수제비에 넣으려고 썰어둔 재료를 조금씩 모아서 넣어 반죽하여 만들었고, 은모님이 노련하게 부쳐내셨지요.

부의주는 오늘 마시지 않으면 맛이 변질될 부의주를 원당의 도움을 살짝 받아 은모님의 손길에서 새롭게 변모한 막걸리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참(비빔국수) 역시 맛있다, 맛있다. 진짜 맛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요. 이 칭찬은 토요일 당번님들의 놓고 간 김칫국양념 덕분이었네요. 은모님의 맛난 부의주 제조능력도 여럿 감탄하게 하였지요.

2) 오후 참: 팥빙수. 

재료 : 냉장고 정리하면서 나온 저 깊숙한 곳에 숨어있었던 토종 개골팥 한봉지, 토요일 당번이 하려다 하지 못하고  놓고 간 한살림 빙수팥 두 병 및 우유, 은모님과 제가 전날 미리 얼려놓고 간 얼음. 역시 냉장고 구석장이에서 발견된 진짜배기 조청.

빙수기:최지현님 제공

아침에 제가 단단히 얼은 개골팥 한 봉을 냄비에 털어넣고, 물을 살짝 부어 끓인 후, 조청으로 간을 하여 단팥물을 만들던 중., 옆에서 은주샘이 조청을 많이 추가하고 원당으로 보충해 맛있게 간을 맞추어주셨지요.

최종 단팥물은 개골팥으로 쑨 단팥과 한살림 빙수팥 두 병을 혼합하여 완성하였지요.  토종 개골팥 +(진짜배기)조청 조합의 수제 단팥과  한살림 팥빙수 팥을 비교해 보니 우리가 만든 수제 토종 단팥의 맛이  훨씬 뛰어났지요.  연미님 아들 현우도 맛있었는지 한그릇을 깔끔하게 비웠지요. 누가 말했다. 현우가 우리가 최종적으로 만들어낸 맛있는 팥빙수를 못먹고간게 안타깝다고. 그러나 누가 알랴( 저만 알지요) .현우가 먹은게 우리가 먹은 혼합 팥빙수보다  훨씬 질이 좋은 100% 수제 토종 개골팥 팥빙수였다는 사실. 실은 현우가 최고의 엑기스 팥빙수를 먹고 간 것이지요. 뭐니뭐니해도 원재료(개골팥)의 질이 좋아야 맛있는 음식을 완성할 수 있는 것 같네요.

팥빙수 제조에도 여러분이 도와주어 완성했어요. 당번은 기본 단팥물과 얼음을 갈아 빙수,연유를 마련해주었을 뿐. 기타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미숫가루도 넣고, 수박도 띄워 환상의 팥빙수를 완성했지요, 역시 모두의 지혜가 합쳐질 때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 이것을 대중의 지혜라 부르고 싶네요.

매번의 냉장고 상황과 밭에서 나는 것이 그때그때 달라지므로 레시피를 공유하는 것은 의미없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오늘의 맛은 원재료가 가진 그 질이 중요하고, 음식에 참여해 만든 사람들의 관심과 정성이 중요하다. 대중의 지혜.

사실 저희 당번 둘이 만든게 아니라 모두의 지혜와 미각을 활용해 만든 결과물이지요. 우리는 그저 재료를 낭비하지 않고 소농의 밥상을 차려보겠다는 기본의 정신만 제공한 것이지요.

저희가 수제비를 주메뉴로 결정한 것도, 실은 그냥 누군가가 수제비 먹고 싶다는 지나가는 말을 했는데,  마침 냉장고에 수제비를 만들 수 있었던 자료가 있었던 것 뿐이었지요. 중요한 것은 낭비하지 않고, 있는 재료와 밭의 재료 십분 활용하는 것이지요. 맛있는 맛을 만들어내야 된다는 스트레스나 강박에 사로잡힐 필요없습니다. 모두가 훌륭한 미각을 가진 요리사입니다. 관습에서 벗어나 생각해보고,  모두의 지혜와 미각을  활용하면 어느 당번이든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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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당번을 하면서 밥상에 대한 고민을 해봤을 거에요. 이미 소농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거구요.  저는 그저 오늘 글로 정리하여 올리는 역할을 맡아 글을 적었을 뿐이고요.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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